어릴 적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엄마한테 혼이 나고 집을 나왔습니다.

나와봤자 갈 데는 뻔합니다. 집성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같은 동네의

외갓집 아니면 이웃집입니다.

 

이웃 아줌마는 콩깍지를 손질하면서 나를 힐끗 보고는 엄마는 지금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주뼛거리다 엄마에게 혼난 얘기를 했고 아줌마가

만들어 준 부침개인가를 먹고 놀다가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녁도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서 그냥 나왔습니다.

 

<한끼 줍쇼>라는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경규와 강호동이 낯선 집을

돌아다니며 저녁을 한끼 달라고 구걸하는 게 기본 컨셉트입니다. 만약

연출이나 사전 각본 없이 ‘진짜’ 리얼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무조건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대착오적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누가 반갑게 맞이할까요.

게다가 자신의 살림살이와 밥상을 방송으로 노출하고 싶은 집주인이

있을까요. 당황스럽고 불편하고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집은 친척이나

친구도 함부로 갈 수 없는 사적인 공간입니다.

 

물론 드물게 문을 열어 주는 집도 있습니다. 불청객을 반갑게 맞고 자신들의

한끼 식사를 내주는 후덕한 집주인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어릴 적 시골생활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프로그램은 ‘환대’에 대한 은유입니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을 들어오게 하여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한 사회가 ‘도착한’ 모든 낯선 존재들을 – 새로

태어난 아기들과 국경을 넘어온 이주자들 – 조건 없이 환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낯선 존재로 이 세상에 도착하여 환대를

통해 이 사회로 들어오지 않았던가?” 1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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