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한 대통령 후보는 “제 부덕의 소치이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그 후 그는
자기 말을 뒤집고 정치에 복귀했고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2002년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했던 여당 후보는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한 후
“제가 불민하고 부덕한 탓이며 국민 여러분께 엎드려 용서를 빈다”고 역시
판에 박은 듯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들의 연설에는 진솔한 개인은 없고 가부장적인 봉건 영주의 모습만 보입니다.
오래 전 정치인들이라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나아지지
않은 게 우리의 정치현실입니다.

이와는 달리 스포츠에서 거장들이 남긴 패배의 변은 우아하게 기억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몇 년 전 세계야구대회 준결승에서 일본에 진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일본 투수가 정말 잘 던졌다. 일본은 이번 대회 팀 가운데 가장 짜임새 있는 강팀이다”
라며 상대 팀의 멋진 경기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습니다. 졌지만 덕장다운 관록과
여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국내 프로리그 정상을 9년간이나 누리다가 패배한 남자배구 신치용 감독은
“섭섭하기보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기분이다. 신진식, 김세진 등
노장 선수들과 소주라도 한잔 해야겠다”며 마치 패배의 순간을 준비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결과에 지저분하게 저항하기보다 품위 있게 패배와 화해하는
모습이 오래도록 멋진 기억으로 남습니다.

유난했던 대통령선거가 이제 끝났습니다. 죽기살기로 싸웠지만 모든 후보가
이길 수는 없습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투표에서 이기고도 선거에 진
엘 고어 후보의 승복 연설은 미국 정치사에 명연설로 남았습니다. 엘 고어까지는
못 되더라도 이번에 선거에 진 후보들도 멋진 패배연설문 정도는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패자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승자의 환희보다 더 여운이 길고 클 때가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는 것보다 지는 일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우아하고 세련되고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으로 퇴장할 준비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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