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사리를 찾지도 말고, 탑을 세우지도 말라.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를 지난 지 꼭 4주 만에 큰 어른 한 분을 잃었습니다.
저는 불자(佛子)는 아니지만 휴대폰 바탕화면을 그 분의 화두와도 같은
‘맑고 향기롭게’를 10년 넘게 사용할 정도로 법정을 존경했습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먼 길을 가려면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지니기에는
짐이 되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라는 것을 마음에 거듭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이 지구를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움이 고인 다음에 친구를 만나야 우정이
더욱 의미 있어집니다.”

“50년을 밥이며 집이며 옷이며 공짜로 얻어 쓰고, 심지어 자동차까지 타고
다니면서 많은 빚을 졌습니다. 내가 세상을 위해서 한 일보다는
받은 것이 더 많구나,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이것을 기억하고 은혜 갚는
일에 좀 더 노력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를 포함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비우고 살아가기’의 아름다움을
깨우쳐 줬던 숱한 글들도 스님에겐 빚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生)에 가져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말씀이
法頂의 마지막 비우기였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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