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

얼마 전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장애 학생이 수강 과목
강의실을 휠체어가 출입할 수 있는 강의실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학교측은
이를 받아들여 해당 강의실을 옮기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일반 학생들이 반발했습니다.
강의실이 350미터나 떨어져 너무 멀다는 이유입니다.

논란 끝에 강의실을 옮기지 않는 대신 담당 교수는 장애 학생의 수업 결손을
별도의 보충수업으로 메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는
난리가 났습니다. ‘교수님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데 1대1 보충은 불공평하다’부터
‘양심이 있으면 장애 학생이 수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까지.

이 대학에 다닐 정도면 중고교 성적이 전교 상위 5%에 들었던 학생들입니다.
온갖 과외에 선행학습 등 공부와 경쟁에는 도가 텄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부
학생들에게는 인간이 반드시 가져야 할 능력이 결여돼 있습니다.
바로 ‘공감능력’.
계단 강의실에 배정된 것은 학교측의 실수인데도 학교 탓을 하지 않고 동료
학생의 장애를 탓했습니다. 그 머릿속에는 ‘장애가 문제’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것입니다.

<휠체어로 누빈 하버드 630일>의 저자 이일세씨는 1996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이 대학원의 유일한 휠체어 장애인이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학교측은 그에게 불편한 것 없냐고 물었습니다. 출입문이 수동이어서 불편하다고
하자 학교는 바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단 한 명의 장애 학생을 위해 대학원
전체가 불편을 감수한 것입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 사고 때 하버드 졸업생 한 명도 희생됐습니다. 그의 부모는
도서관을 지어 하버드에 기증하면서 ‘하버드 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수영을 필수
과목으로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하버드가 이를 받아들여 수영을
필수과목으로 정했으나 ‘장애인 차별’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그 조건은 철회됐습니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특혜’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인들은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유아기에 이미 선행학습을 시키고 중고교 때는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온 가족이 동원됩니다.

‘니가 최고가 돼야 한다’는 식의 교육은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라’는 뜻의
다른 표현입니다. 공부 잘하고 경쟁에서 이긴 학생들이 모인 대학에서 벌어진
일을 보며 깨닫습니다. 우리는 나이 들면서 꼰대가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어릴 때부터 꼰대입니다.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 모두 꼰대가 되라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1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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